스티브 잡스...

James1004's Page/And So On 2007.05.15 03:51
우리들이야 DRM을 없애면 좋기는 하겠으나 아이포드와 아이튠 장사를 하는 잡스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글쎄.
아이포드쪽에 더 비중을 두는 속셈인건지.
그나저나 벅스의 DRM 프리는 어찌 결론이 날지.





어린시절, 늘 우는 소리를 하는 외톨이, 시간낭비라 생각되는 숙제는 손도 안대고, 퇴학을 당하게 된다. 중학교는 불량아들이 우글거리리는 곳, 트랜지스터 등을 가지고 노는 것이 행복한 아이. 깡마르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전자기기에 대한 집중력과 관심만은 남달랐다.잡스는 텔레비전을 싫어해서 보지 않는다. 그에게 텔레비전은 가장 정신을 좀먹는 기술이다.

대학시절 동양철학에 심취했다. 스티브의 첫학기 성적은 형편없었다. 그냥 평범한 말은 그에게 통하지 않았다. 그는 자동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진실을 거부했다. 모든 것을 직접 해보고 싶어 했다. 스티브는 자신을 증명해보여야 한다는 불안감이 마음 깊이 있었다. 아무래도 고아출신이었기 때문인것 같다.

스티브는 선불교에 빠져 있었다.
선불교는 수행자가 스스로 종교에 입문하는 방식으로 안내자가 필요로 하지 않았고 이 점이 스티브의 마음에 들었다. 그는 영적 스승인 코빈 곁에서 몇년 동안 공부를 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나중에 코빈은 잡스의 두번째 회사인 넥스트의 공식적인 '로시'(존경하는 스승)가 되었고 스티브의 결혼식을 집전하였다. 이 스승의 비밀은 어떤 질문에 대해서도 마음 속에 떠오른는 대로 대답하는 능력에 있었는데 이것은 스티브에게도 평생의 습관이 되었다. 그의 경영 스타일이 코빈에게서 영향 받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여행은 보상이다' 같은 선문답은 스티브의 진리감각에 호소력을 발휘했다.

스티브의 가장 강력한 설득방법은 -
하루에 3번씩 전화를 하는 것과, 만나면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부품을 외상으로 얻을 때도 그랬고, 레지스매키너에게 애플 광고를 해 달라고 조를 때도 통했다.

애플이 주식회사가 되면서 -
스티브잡스의 두가지 기질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한편 늘 조바심을 내기 시작한다. 왜 일이 지연되는가에 대한. 애플 2가 나올 즈음, 워즈와의 사이가 갈라지기 시작한다. 항상 최종 사용자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좋았지만 너무 거만을 떨었다. 알 수 없는 복잡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는 항상 '올바른 것'에 대한 판단력은 잃지 않았다. 회사가 손해를 보더라도 사용자에게 옳은 것, 그의 까다로운 성격이 그나마 용인된 것은 그가 옳았던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화를 자주 돋우긴 했지만, 꿈과 문화의 창조자란 존경을 받았다.

회사가 승승장구해도 스티브는 기쁘지 않았다. 그것은 워즈가 만든 애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스티브의 컴퓨터라고 인정되는 제품을 내놓고 싶었다. 리사로 명명된 프로젝트는 제록스 PARC에서 본 마우스 방식 인터페이스와 화면 그대로 출력이 되는 형식을 갖추지만 시장에서 실패한다.

스티브는 주식상장을 통해 1억달러가 넘는 갑부가 된다. 하지만 인도여행을 같이 하고 동거동락한 댄 코트키에겐 주식을 주지 않았다. 스티브에게 가장 중요한 항목은 충성심과 똑똑함이다. 스티브의 세계에 속한다면 모든 면에서 그에게 충성해야 한다.

1979년 회사에서 특정임무가 없는 임원에 따분해하던 잡스의 눈에 래스킨이 만든 매킨토시가 눈에 들어온다. 래스킨은 그것을 토스터라 불렀다. 추가장치가 필요 없는 자급식 기기, 그것 하나만 사면 다른 것은 필요 없는 장치.

스티브는 주위 사람들이 자신의 엉뚱한 현실감각을 믿도록 만드는 능력을 지녔다. 아주 빠른 응답, 재치 있는 문구, 가끔씩 아주 독창적인 통찰력이 혼합된 것이었다. 스티브는 그런 것을 뒤섞어 사람들이 자기 말에 넘어가게 만든다.

스티브는 자질구레한 세부사항까지 챙기는 마이크로매니저였다. 덕분에 최종결과는 좋았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은 고통스러웠다. 스티브는 안된다는 대답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스티브는 수천마일 떨어진 지평선 너머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 가는 길목 길목의 자세한 지형은 제대로 볼 줄 몰랐다. 이것이 그의 천재적 재능이자 몰락의 원인이었다.

1985년 스티브는 애플에서 어떤 자리도 얻지 못하게 된다.

유럽여행을 하면서 생각한다. 난 권력지향적인 사람은 아니다. 애플이 잘되기를 바랄뿐이다. 성년의 삶 전체를 애플에 바쳤다. 지금도 애플을 위한 길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빗자루로 바닥을 쓰는 일도,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이라도...하지만 1986년 초 달랑 한 주만 남겨두고 주식을 모두 처분한다. 한 주를 남겨둔 것은 연례보고서를 계속 받아보기 위해서였다. 스티브잡스는 숱한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전쟁에선 졌다.

스티브의 협상스타일은 언제나 자신이 유리한 입장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쥐고 있는 패가 엉망일 때도 그런 태도를 버리지 않았다. 스티브는 언제나 과단성과 뻔뻔함으로 살아왔다. 가끔은 그런 겁없는 과감함 때문에 좀 더 조심성 있는 사람들에게 된통 당하고 말았지만, 그래도 그가 계속 물 위에 떠서 헤엄칠 수 있었던 건 그런 과단성과 뻔뻔함 덕이었다. 그보다 훨씬 조심스런 사람들은 이미 물에 빠졌거나 너무 멀리 가다가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1998년 1월, Think Different란 가치를 내걸고 스티브잡스는 애플 CEO로 돌아와서 맥월드 엑스포에서 연설한다. 애플을 흑자로 돌린 주인공인 어밀리어의 업적은 모두 뭍혔다. 그는 토이스토리 시사회에서도 토이스토리를 만들어 낸 래스터와 공유하지 않고, 혼자 무대를 독차지했다. 스티브를 조롱할 여지는 많다. 하지만 그는 아이콘이다.

스티브잡스와 아이스너는 둘다 닮은 구석이 있었다. 둘 다 밑바닥에서 정상까지 올라왔고 뛰어난 지능과 비상한 통찰력을 소유했으며 타고난 사업감각과 비범한 인재들을 다루는 재주가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충성심을 가장 귀한 덕목으로 취급하면서 누군가 오랜 믿음을 배신하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보복을 가했다. 누군사 무가치하다고 생각되면 오래 알고 지내던 사이라도 매정하게 잘랐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본능을 믿었고, 작은 팀을 조직화 해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밀어붙여서 화려한 스타일과 혁신 (혁명이 아닌)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을 가졌다.
어느 인터뷰 자리에서 인터넷 창업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 문제는 인터넷 사업을 금방 팽개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사업을 하다보면 해고도 하고 계획도 취소해야 한다. 그럴 때마다 극심한 고통과 절망을 느낀다. 그런데 내가 누구인지, 내 가치가 어느정도인지를 알게 되는 것은 바로 그런 순간이다. 창업으로 엄청난 부자가 된 사람들을 봐 왔지만, 자기를 속이고 가장 보람 있는 일을 하지 않은 것 같다고, 그래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지도 못할 것이고, 새로 얻은 부를 똑바로 활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느낀다.

우리가 팜을 만들지 않는 걸 두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게 정말 쓸모 있는지 자문하기 시작했다. 회의실에 그것을 들고 나타나는 사람이 1년 전에는 50%였으나 지금은 10%도 안된다. 누가 억지로 문화를 만들수 없는 것이다.

2주 동안 스티브는 가족들과 세탁기를 고르는 일에 전념했다. 결국 유럽산을 선택했는데, 이유는 미국에서 그 제품을 사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 "새 세탁기는 지난 몇년 동안 우리 가족이 집에 들여놔서 정말로 행복했던 물건 가운데 하나다. 이것은 내가 오래 봐왔던 어떤 하이테크 제품보다 훨씬 나를 설레게 했다".

에필로그

서른 살의 미숙한 젊은이는 컴퓨터 시장을 개막하는 컴퓨터를 만들었다. 애플에서 쫒겨난 뒤 애플의 마법이 하드웨어에 있다고 생각해서 넥스트를 차렸고, 픽사를 하드웨어 회사로 잘못 생각하고 그것을 사들이기까지 했다. 결국 회사의 진정한 것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인재들이란 것을 느끼고 소프트웨어에 눈을 뜬다. 그는 이제 새로운 전쟁을 시작한다. 최고의 싸움이 그렇듯 이번 싸움도 개인적인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를 이기려 한다. 이 싸움은 세익스피어적인 것이며 근본적인 것이고 감정적인 것이다. 그 싸움을 지켜보는 것은 21세기 벽두의 가장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출처 : http://www.davidndanny.com/index.php



DRM을 없애자는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가 “음악에 관한 생각“이라는 에세이를 자사 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DRM을 없애자는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의 에세이는 디지털 뮤직 산업에서 가능한 세가지의 시장 모델을 간결하게 정리하면서, 이 세가지 모델에서 DRM 없이 자유롭게 mp3파일을 파는 방식만이 소비자에게도 좋고 음악 산업도 사는 길이라고 주장합니다. 작년 말부터 이렇게 좋은 소식들이 연달아 들려와서 상당히 기분이 좋습니다.

일단 스티브 잡스가 에세이에서 기술한 디지털 음반 산업이 생각할 수 있는 세가지 모델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 steve jobs drm.pdf)



첫번째 모델은 디지털 음반 산업에 참여하는 모든 당사자들이 각기 자신들의 판매망과 자신들의 기계에서만 연주되는 음악을 파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애플은 애플 iTunes 음반 가게(iTMS)를 통해 애플의 아이팟에서만 틀 수 있는 음악 파일을 파는 것이고, 마소(MS)는 마소의 Zune플레이어에서만 연주되는 파일을, 소니는 소니에서만 돌아가는 파일을 파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세계 4대 거대 음반 산업의 근시안적인 시각때문에 이 방식이 현재는 (어둠의 경로가 아닌) 합법적인 디지털 음악 파일 판매 사업의 지배적인 모델이 되어버렸습니다.

두번째는 디지털 음악 파일을 파는 모든 회사들이 DRM 동맹을 맺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시말해 자신들의 “다빈치 코드”를 서로 공유해서 각기 다른 회사의 mp3 플레이어에서도 아무런 문제없이 작동할 수 있는 DRM이 걸린 파일을 팔자는 것입니다. 저작권을 보호할 수도 있으면서 동시에 소비자를 어떤 한 DRM에 가두는 못된 발상에서 벗어나는 공정한 사업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스티브 잡스는 이건 꿈에서나 가능한 모델이라는 것입니다. 일단 코드가 누설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고, 그렇게 코드가 누설되면 그 파장은 너무나 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세번째의 대안인 DRM을 완전히 없애자고 주장하고 나섭니다.

The third alternative is to abolish DRMs entirely. Imagine a world where every online store sells DRM-free music encoded in open licensable formats. In such a world, any player can play music purchased from any store, and any store can sell music which is playable on all players. This is clearly the best alternative for consumers, and Apple would embrace it in a heartbeat. [thoughts on music by Steve Jobs]

스티브 잡스의 주장에 대해 미국 음반 산업 협회의 매파와 그들의 대변자들은 곧바로 스티브 잡스를 비판했습니다. 비판의 요지는 “스티브 잡스는 하드웨어의 비호환성의 문제에 대한 소비자들의 비판을 엉뚱하게 음반협회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헐뜯기 수작’이다” (Ken Hertz)는 것입니다. 이들은 (음반협회의 중역들과 Hertz) 또 “애플컴퓨터는 DRM의 피해자이기는 커녕, 디지털 음악 판매 시장에서 지배적인 세력이 되기까지 DRM을 이용해 소비자들을 자사 제품에 가둠으로써 엄청난 수혜를 본 수혜자이다”라는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이런 비판을 미리 염두에 둔 스티브 잡스는 이미 에세이에서 왜 그런 주장이 말이 되지 않는지 반박하고 있습니다.

2006년에 애플은 9천만개의 아이팟을 팔았고 20억개의 음악 파일을 팔았습니다. 아이팟 한 개당 평균 22개의 음악 파일이 팔려나간 셈입니다.
그런데 현재 시장에서 가장 인기있는 아이팟은 1000개의 음악을 담을 수 있고, 조사한 바에 따르면 보통 사람들은 아이팟을 거의 만땅으로 채워가지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 아이팟 한 대당 겨우 22개의 음악 — 3% — 만이 DRM이 걸린 것이고 나머지 97%는 DRM이 안 걸린 mp3파일이라는 셈입니다. 따라서 애플이 DRM을 이용해 시장에서 소비자를 가뒀다는 말은 넌센스입니다.

스티브 잡스의 쿠데타같은 이 주장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바입니다.

-출처 : http://feeds.feedburner.com/~r/gatorlog/~3/88373092/

  • “상상을 현실로…” 변화·혁신으로 세상을 바꿔
  • <4> ‘창조 경영’의 제왕 애플컴퓨터 CEO 스티브 잡스
    미래 비전 실현해내는 ‘창조적 리더십’ 갖춰
    발상의 전환 ‘아이팟’ ‘아이튠스’ 공전의 히트
    카리스마 넘친 연설… ‘잡스敎’ 신자도 만들어
  • 김희섭 기자 fireman@chosun.com
    입력 : 2007.01.05 00:40 / 수정 : 2007.01.05 04:19
    • 새 영웅을 갈구해온 세계 경영계에 거대한 카리스마가 등장했다. ‘경제에 디자인과 창의성을 도입한 인물’(비즈니스위크), ‘세상에서 가장 창의적인 경영자’(보스턴컨설팅그룹)…. 전 세계 언론과 경영학자들이 스티브 잡스(Steve Jobs·52)에게 헌상하는 수식어들도 갈수록 화려해지고 있다.

      애플컴퓨터의 창업자이자 CEO(최고경영자)인 그는 ‘창조경영’으로 경영에 일대 변혁을 일으킨 혁명가다. 세계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애플’, 최초의 3D(3차원) 디지털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MP3플레이어 ‘아이팟’과 온라인 음악 서비스 ‘아이튠스’…. 그가 창안한 제품과 서비스는 세상을 뒤흔들었고, 전 세계에 수많은 열성 ‘잡스교(敎) 신자(信者)’들을 만들어냈다. 그는 단순히 제품을 만들어 파는 사업가가 아니다. 세계인의 라이프스타일(생활양식)과 문화 자체를 바꾼 디지털 혁명가인 것이다.

      그는 또한 실리콘밸리(IT산업)와 할리우드(엔터테인먼트 산업)를 동시에 지배하는 디지털 제왕(帝王)이다. 다가올 시대에 대한 확고한 비전과 상상력, 비전을 설득하고 실현해내는 창조적 리더십이 그를 이 시대 가장 위대한 경영자로 만들었다.

      ◆시대의 ‘아이콘’을 만든다

      잡스는 ‘괴짜’다. 동양철학에 심취해 대학을 중퇴했다. 영혼의 스승을 찾겠다며 회사를 그만두고 누더기 차림으로 인도를 여행했다. 맨발 차림에 과일 다이어트를 종교처럼 신봉하고, 샤워를 거부해 몸에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기도 했다.

      기성 체제에 얽매이지 않고, 이루고자 하는 꿈에 매달리는 잡스의 집중력과 추진력은 기업 경영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청바지와 검은색 티셔츠를 즐겨 입는 그는 “물건만 잘 만들면 1등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며 창의성과 상상력을 강조한다. 잡스는 직원들에게 끊임없이 ‘주문(呪文)’을 건다. ‘다르게 생각하라’ ‘미칠 정도로 멋진 제품을 창조하라’ ‘즐기면서 일하자’가 그의 입버릇이고, ‘해적(海賊)이 되자’는 도발적 화두도 던진다. 애플의 개발팀은 1주일에 90시간을 신나게 일한다. “단순한 제품을 넘어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icon·우상)’을 만들자”는 잡스의 비전이 직원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22세(1977년) 때 그는 책상에 올려놓는 개인용 컴퓨터 ‘애플’을 출시했다. 방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의 대형 컴퓨터 일색이던 당시, 컴퓨터가 이렇게 작아질 수 있다는 것은 혁명적인 변화였다.

      1980년대 애플의 경쟁사들은 비용절감이나 가격 대비 성능을 높이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IBM을 비롯한 대부분의 컴퓨터는 시커먼 배경화면에 흰색 글자를 사용했다. 전력소모량을 아끼기 위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잡스는 거꾸로 갔다. 흰색 바탕화면에 검은 글자가 뜨도록 설계했다. 마우스를 눌러서 프로그램을 실행시키는 그래픽 형태의 혁신적인 PC 운영체제(OS)도 개발했다. 이러한 창조적 발상은 이후 개발되는 컴퓨터의 표준기술로 자리잡았다.

    • ◆발상의 전환으로 세상을 바꾸다

      잡스를 잭 웰치(전 GE회장)를 능가할 ‘경영의 제왕’으로 부상시킨 것은 MP3플레이어 ‘아이팟’과 디지털 음악 서비스 ‘아이튠스’의 대성공이다. 이것을 통해 잡스는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의 동시 지배자가 됐다. 2001년 아이팟이 처음 나올 당시 시장엔 삼성전자를 비롯한 선발업체들이 MP3플레이어를 팔고 있었다.

      하지만 판매실적은 신통치 않았고, 시장은 미성숙 단계였다. 잡스는 “제품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이를 편리하게 쓸 수 있는 서비스가 없다”고 분석했다. 하드웨어(아이팟)와 소프트웨어(아이튠스)를 결합시킨다는 발상의 전환으로 시장의 구도 자체를 바꾼 것이다.

      잡스는 음악CD를 간단히 컴퓨터로 복사하고 재생할 수 있는 ‘아이튠스’ 프로그램을 만들어 무료로 배포했다. 음반회사와 제휴해 아이튠스를 기반으로 한 온라인 음악 다운로드 서비스도 내놓았다. 잡스는 아이팟에도 최대한 단순하고 직관적인 디자인을 도입했다.

      경쟁사들이 복잡한 기능추가에 매달릴 때 그는 반대의 길을 갔다. 아이팟은 크기와 무게를 줄이기 위해 녹음이나 라디오 기능을 모두 제거했다. 복잡한 버튼을 대폭 줄이고, 간편한 ‘스크롤 휠’ 방식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이용자들은 사용이 편리하고 혁신적인 디자인을 갖춘 아이팟에 열광했다. 아이팟은 작년 한 해 동안 약 4000만대가 팔렸다. 세계 시장 점유율은 50%에 육박한다.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은 임직원에게 “우리가 MP3플레이어를 먼저 개발하고도 시장을 놓친 것은 뼈아픈 실수”라며 “애플의 창조적 발상을 배워야 한다”고 주문한다.

      ◆대중을 열광시키는 카리스마

      2005년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에서 축사를 했다. 이제 세상 속으로 나가는 젊은이들에게 그는 췌장암에 걸려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으나 극적으로 회생한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매일을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살아야 한다. 헝그리 정신을 가지고 미련할 정도로 자기 길을 가라(Stay Hungry, Stay Foolish)”고 충고했다.

      잡스의 감동적인 연설장면은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그의 대중연설은 사람을 휘어잡는 마력을 갖고 있다. 잡스가 탤런트적 기질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데다 철저한 사전준비가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잡스는 연설에 앞서 연설문 문구와 무대장치까지 꼼꼼히 검토한다.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사전연습을 수없이 반복한다.

      잡스는 원래 독선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이기주의자였다. 회의 때면 화이트보드를 독점하며, 제품 이름에서 포장박스 크기까지 모든 일을 자신이 결정했다. 과도한 기술우월주의에 빠져 개발한 신형 컴퓨터가 줄줄이 실패하면서 1985년엔 자신이 만든 회사(애플)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20대 억만장자에서 끝 모를 바닥까지 추락한 경험은 그를 새로 태어나게 했다. 우여곡절 끝에 2000년 애플의 CEO로 정식 복귀한 그는 앞머리가 벗어지고 안경을 쓴 중년 남자가 됐다. 당시 애플의 신제품 발표회장에서 그가 한 연설은 지금도 ‘잡스교도(敎徒)’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저는 세상에서 제일 뛰어난 인재들과 일하고 있습니다. 애플은 ‘팀 스포츠’로 움직입니다.”

      수천여 청중들은 일제히 뜨거운 기립 박수를 보냈다. 잡스가 가장 좋아하는 존 레넌의 노래 ‘이매진(Imagine)’이 흘러나왔다.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나를 보고 몽상가라 비웃을지 모르지만 나만 그런 건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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