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키캐스트” 과연 ‘악마’인가..?-
요즘 SNS에 ‘피키캐스트’에 대한 이슈가 많은 것 같다.
내 타임라인 특성상 ‘저작권’ 개념에 민감한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다들 ‘피키’를 ‘주적’으로 삼고 씹어 돌리고 있다.[잘근 잘근~]
그런데, 내 생각은 많이 다르다.
[읽어볼 만 할 거라 믿으며 시간을 투자해보길....^^]
먼저 간단하게 ‘저작권’에 대한 내 관점을 간단히만 전한다.
일단, 원칙적으로 ‘저작권’이란 개념이 절대적인 저작자의 ‘독점권’이라고
생각하는 패러다임은 오래전에 박살났다고 본다.
아니 지켜진 적도 없고,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저작권의 100% 독점권과 소유권은 오직 저작자의 ‘머리’속에서만 가능하다.
저작자의 저작물이 세상에 선보여지는 그 순간부터 이미 100%의 독점권이란
사라진다고 여기는게 옳다고 본다.
이미 내 의지를 벗어난 ‘생물’이라고 보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로울 것이라
판단된다.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화재’를 진화하는 사람들은 ‘불’을 대할 때 ‘생물’이라고 여겨진다고 한다.
바람이나 외부의 어떠한 상황을 배제한다 하더라도 ‘불’은 자의적으로
번지며 사그라들 때가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화재 진화’에 원칙은 있지만, 원칙대로 굴러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같은 소리지만.....일리 있는 것 같다.[팩트는 모르겠다...^^]
이와 비슷하게 저작권도 생각처럼 컨트롤 될 수가 없다.[절대 없다.]
어떠한 수단 방법을 다해 통제하려 해도 담뱃불이 산을 삼키는 것 같은
미지수의 일이 벌어진다.
고소를 하고 재판을 하고 무슨 지랄을 해도 희한한 일은 곳곳에서 펼쳐진다.
‘저작권’에 대한 개념과 패러다임의 얘기는 너무 거창해지기 때문에 그냥
관점만 이렇게 간단히 전하고 마지막에 결론으로 다시 더 언급할 것이다.
피키캐스트라는 새로운 미디어? 세력?...아무튼 이 존재는 ‘큐레이션’이라는
멋진 말로 기존의 누군가 만들어 놓은 저작물을 가공해서 SNS시대의 소비자들에게
상당히 어필하며 현재 수익까지 내며 승승장구 한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 지금 그들이 하는 짓은 세상이 원하는 것을 가장 먼저 발 빠르게
행동으로 옮긴 것이며 운 좋게 그게 사업화 되어 가고 있는 것 이라 생각한다.
한마디로 ‘쿨’한 녀석들이고 ‘운’좋은 친구들이다.
이렇게 표현해보자.
출판만화가 인기작을 100만부씩 판매를 해대며 ‘돈’을 벌던 시절이 있었다.
네이버, 다음 같은 업체에서 ‘웹툰’이라는걸 만들지 않았다면 그들의 전성시대
는 계속 이어졌을 것이다.
출판만화사와 출판만화 작가들의 관점에서는 ‘웹툰’이 ‘피키캐스트’일수 있다.
그 시절 출판사는 웹툰과 포탈을 무지하게 까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 대형 출판사는 ‘디지털’ 전환으로 생명을 유지하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서로를 인정하며 세상이 흐르는 방향을 인정하며 살아내고 있다.
마찬가지로...
옛날에 대형 음반사는 음반을 100만장씩 판매하며 수십억원씩 수익을 남겼다.
소리바다, 벅스, 멜론이 나오면서 패러다임은 바뀌었고, 역시 ‘디지틀’로 재편되었다.
옛날 음반사가 보기에 ‘소리바다’ ‘벅스’ ‘멜론’은 ‘피키캐스트’였다.
하지만, 지금은?...
계속 싸우지만, 모두들 그 틀 안에서 음악하며 살고 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다시 옛날로는 돌아가지 않는다.
절대.
시대가 원하는 ‘거대한 흐름’이라는 게 있다.
그걸 좀 폼나게 개척하면 ‘스티브 잡스’가 되는거고, 자세 안나오게 개척하면
‘피키캐스트’가 되는게 아닐까?....
‘피키캐스트’는 생긴게 아니라 ‘필연’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바로 ‘세상’이 원하기 때문에 말이다.
난 ‘큐레이션’이라는거 벌써 질렸다.
잘 안본다.
언젠가는 다른 형태의 쿨한 미디어 방식이 ‘피키’를 밀어낼 것이다.
자명하다.
그때도 기존의 업체들은 ‘지랄’을 해댈 것이다.
세상이란 원래 ‘기성의 존재’에 질린다.
새로운 ‘존재’가 나타나면 환호하고 기존의 기득권층은 이를 가는 것이다.
지금 이렇게 ‘피키’에게 사람들이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은 ‘저작권 침해’라는
사안 때문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미 정리되기 힘든 수없이 많은 더 큰
저작권 침해는 어찌할텐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다 변명이다.
새로운 녀석이 나타났고, 그 녀석이 얄미운거다.
욕할 이유를 찾다보니 하나가 걸린거고 그걸 크게 부풀리는 작업에 모두가 말려들고
있는 것 뿐이다.[저작권이라는 말이 나오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말려든다.]
피키캐스트가 하고 있는 일이 ‘착한일’이라고는 못하겠지만, ‘악’이라고는 절대 할 수 없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더 큰 악을 행하고 있는 ‘멜론’같은 사이트가 아직도 건재할 뿐만 아니라
매달 정기적으로 저작권자에게 돌아가야할 돈을 개인에게서 빼내서 6000원씩 가져가고 있는 상황이 지속되는걸
방관하는 사회에서는 적어도 그런말을 하는게 어색하기 때문이다.
모두를 부정하든가, 모두를 인정해야 하는 딜레마.....
‘과거’의 패러다임 속에서 세상을 비난하면, 모두가 ‘사탄’이다.
‘미래’를 내다보며 ‘현재’를 인정하는 사람에게만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할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장담할 수 있다.
지금 ‘피키캐스트’를 욕하는 자들에겐 ‘미래’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난 ‘피키캐스트’를 찬양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앞서가는 사람들이다.
배울 점을 인정하는 것이 차라리 현명하다.
문제가 심하다면 ‘법’이 판단할 거라 믿는 수밖에 없다.
피키캐스트도 언젠가는 새로운 누군가에게 밀리는 날이 온다.
그리고 그때에는 지금 피키를 까는 사람들의 패러다임으로는 아예
‘생존’ 자체가 힘든 세상일 것이다.
그래도 피키 캐스트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더 큰 악에 대한 심판을 먼저
제기해보는 것을 권해본다.
큰 적이랑 한번 싸워봐야 작은 적들 왜 저지랄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아니...솔직히 말하지.
“사실은 니가 바로 ‘작은 악마’다.”
바로 니가 ‘악’이라는 ‘인식’을 하게되면 ‘손가락질’하기가 쉽지 않겠지.
멜론이 애플처럼 7:3으로 저작권자의 권리를 지키게 해주는게 먼저다.
그리고 니가 지금 당장, 바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토렌트로 다운 받지 않는게
선행 되어야 한다.
니가 지금 불법 스캔 만화 사이트에 클릭하는 짓을 멈추는게 먼저다.
니가 불법 프로그램을 니 컴퓨터에 깔지 않는게 먼저란 말이다.
내가 장담컨대, 너는 비난할 자격이 없다.
적어도 ‘저작권’을 논할 자격은 아마 없을 것이다.
‘피키캐스트’가 하는 ‘저작권’ 침해가 니가 하는것보다 클거라 생각하나?
천만에....
‘피키캐스트’를 사태를 보며 넌 이런 교훈을 얻으면 된다.
‘세상은 변하는구나.’
‘세상엔 어디서나 새로운 것을 질투하는 사람들이 있구나....난 그렇게 되지 말아야지’
....이 정도다.....
피키는 꽁짜다.
넌 그냥 즐기면 되고, 걔네가 망하면 새로운 걸 즐기면 된다.
관련업체 간부가 아니라면 생각없이 욕할 필요 없다.
결국....니 얼굴에 침 뱉는거니까.
피키는 지금 우리나라 소비자의 얼굴을 비추는 거울 속 진짜 우리 모습일 뿐이다.
우리 모두가 저작권을 갉아 먹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그런 녀석이
‘필연’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도둑은 도둑을 심판하지 못하는 법이다.
2,000년 전, 예수님의 말씀을 세겨보자.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신약성서, 마태복음 7장 3~5-
‘피키캐스트’를 '악으로 여길 필요가 없다.
그저 흘러가는 세상에서 거쳐가는 한 정거장이다.
피키를 부정하려면 ‘너’ 자신을 부정하는게 먼저다.
저작자의 ‘저작권’은 소중한 재산이다.
땅을 소유하고 있는 소유자는 땅문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곳의 언저리에 나있는 작은 길은 누구가
오가는 것이다.
그곳에 봄에는 소유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꽃이 피며
겨울에는 얼음이 얼고, 밤에는 전혀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사랑의 대화를 하며, 때로는 노상방뇨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나 안다.
그땅의 임자는 따로 있음을....
이게 지금의 ‘저작권’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이다.
이 관점을 무시하고 역행하는 이들에겐 안타깝게도
‘분노’만 남을 것이다.
하지만, 언급했듯이 그 ‘분노’조차...어불성설이다.
긴글을 마친다.
내글을 보며 어지러운 니 머리속에 새로운 시각을 가지면 좋겠다.
‘비난’의 정서를 버려라.....그런 고리타분한 문제는 ‘법’에 맡겨라.
앞서가고 싶다면 더더욱 그런 마음은 버려라.
세상은 ‘필연’에 의해 새로운 미디어, 서비스를 내놓는다.
그것이 환영받는다면 그것은 많은 부분 우리의 모습이며 거울이다.
니 친구, 선배, 동료의 주장을 잠시 접고 생각해보길 바란다.
과연 지금 나는 어느 쪽을 선택하는게 옳은지.
얼굴에 침을 뱉으며
과거의 기준으로 현재를 비난하며 ‘분노’에 영혼을 맡길 것인지.
미래로 흘러가는 거대한 강줄기를 유유히 바라보며 현재를 누릴것인지....
-너도 가끔은 고민하며 생각하고 니 뜻대로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