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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의 표절'에 대한 가장 쉽고 올바른 이해

James1004 2012. 11. 18. 08:53

인터넷 포탈의 '메인화면'에는 5초이상 눈길을 주어선 안된다.

그 이상 쳐다보면, 제 아무리 보살같은 자라 할지라도 '클릭'하고픈 기사 하나쯤은 꼭 있게 마련이다.

 

TV를 보지 않기 때문에 나에게 포탈 메인화면은 '이슈와 유행'을 알수 있는 가장 확실한 채널이지만 요즘은 하도

거지같은 글들이 많아서[주제나 소재를 떠나서....한글 맞춤법이나 문법의 문제가 심각하다.......ㅠㅜ] 멀리하는 편이다.

하지만, 음악 관련 글들 중에 '표절'같은 소재는 절대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이번에는 대중음악계의 거물급 인물 '박진영'이 타겟이 된 모양이다.....

일년에 한번 이상 찾아오는 '표절'시비에 대한 이해는 각계계층에서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예술'에서의 '표절' 큰 문제다.

자칫....'아티스트'를 '잡놈'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거의 대부분의 '예술분야'에서는 '표절 시비'가 그렇게 자주 거론 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이넘의 국내 '대중음악'씬에서의 '표절'시비는 단 한해도 그냥 넘어가 주질 않는다.

 

 

 

 

 

 

 

서론이 길었다.

이제부터 이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대중 음악에 있어서의 표절'이란 것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올바른 가치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

간단한 '인사이트?'를 제공하고자 한다.

 

우리가 만나는 대중음악들에 완전히'똑같은 것은없다'라고 본다.

심지어 노래방 반주기의 반주조차 완전히 같은 노래의 반주라고 볼 수 없는 경우도 있기에...

세상에 완전히 똑같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도 같은 이치일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완벽한 창작' 또한 절대 없다.

 

무슨 이야기일까?

 

'창작'이란 엄밀한 의미에서 '창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대중음악의 창작'은 어떤 프리즘으로 바라봐야 할까?

 

 

 

그것은 '발견'으로 접근하면 이해가 빠를수 있다.

 

지금 부터 풀어 놓는 '예'를 '대중음악의 창작'이라고 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살기 좋은 별이 있었다.

이 '별'에는 많은 산봉오리들이 존재하는데, 그곳에는 정말 아름다운 나무와 꽃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이별에 도착한 지구인들은 이별의 산봉오리들을 정복하기 위해서

너도 나도 탐험에 나섰다.

 

탐험가들은 여기 저기 좋은 곳이라 생각되는 봉오리를 오르기 위해 도전을 시작했다.

 이윽고 니콘의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탐험을 시작한 A라는 탐험가가 너무나 아름다운 산봉오리를 발견했고

가장 멋진 구도에서 A봉오리의 사진을 찍어서 지구별의 사람들에게 전송했다.

 

지구별 사람들은 그 별의 아름다운 모습들에 반하며, 그 사진을 촬영한 A 탐험가에게

경의를 표하며 그 사진을 구입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생겨났다.

또 다른 B라는 탐험가가 최신형 캐논 디지틀 카메라로 비슷하지만 더 선명하고 이쁜 사진을 전송하며

이를 B봉오리라며 지구별 사람들에게 판매했다.

 

A봉오리보다 칼라풀하며 선명한 이 B봉오리의 사진들!

A봉오리와 비슷한 모양에 비슷한 꽃나 나무들의 사진이었지만, 더 풍성해 보이고 아름다워 보이는 이 B봉오리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충격적인 사실이 알려졌다.

이 B봉오리 사진은 사실, 1년 전에 A탐험가가 갔었던 A봉오리를 B가 다시촬영한 사진이었던 것이다.

 

지구별에서는 난리가 났다.

일단, A탐험가는 B탐험가에게 이럴수 있느냐며 따져 물었다.

자기가 이미 1년 전에 갔었던 곳을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B봉오리라며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B탐험가는 A탐험가에게 항변했다.

내가 보기엔 그 별의 봉오리 중에 A봉오리가 제일 멋져 보여서 가긴 갔다.

그런데 나는 A가 찍은 구도 보다 더 멋진 반대편에서 촬영을 했고, A가 가져간 허접한 구형 카메라가 아닌

최신 장비인 캐논 장비와 후보정 도구들을 가지고 올라가는 고생을 했다는 것이다.

 

A탐험가는 황당했다.

자신이 분명 지구별 사람중에 가장 먼저 정복한 봉오리였는데, 이름도 자신의 이름을 따서

분명히 A봉오리라고 지었는데, 어떻게 B라는 이름으로 사진을 판매했냐는 것이다.

 

B탐험가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같은 봉오리는 맞지만, A의 사진보다 내가 촬영한 사진이 훨씬 멋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같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그랬다.

이름을 정정하겟다.

A+ 사진으로 하겠다.

 

A는 더 큰 분노로 B와의 진흙탕 싸움을 시작했다.

A-로 해라!

내가 먼저 정복한 산이고, 내가 먼저 촬영한 봉오리다.

 

하지만, 지구별 사람들의 입장은 나뉘기 시작했다.

A+다. 아니다 이건 A-다. 아니다 이건 아주 다른 B다....라고

결국 이 사건은 A-, A+라는 두개의 안을 두고 오랫동안 논쟁거리가 되었다.

 

이런 지구별의 난리를 목격한 C와 D의 에피소드를 한예로 더 들어보자.

 

기존의 탐험가들은 A의 높고 멋진 광경에만 열광했는데, C는 논란에 휩싸이는 탐험가가 되기 보다는

새로운 봉오리의 사진을 지구별에 보내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하고 싶은 타잎이었다.

 

그래서 C는 출발점을 전혀 다른 곳에서 시작하여 험한 길을 돌아 돌아 힘든 탐험을 계속하여 10년 후에

 놀랍게도 A만큼 아름다운 C봉오리를 발견하기에 이른다.

유레카! 유레카!

 

C는 준비해간 카메라로 모든 구도의 사진 수천장을 지구로 전송했다.

놀라운 광경의 파노라마에 감동한 지구별 사람들은 C에게 열광했다.

 

 

하지만, 또 다시 사건이 터졌다.

D라는 탐험가가 바로 뒤이어 그 길을 따라, C봉오리의 동영상을 더욱 아름답게 촬영해서 지구별에 전송한것이다.

그리고 이름을 D라고 했다.

 

역시 지구별은 또 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이건 '사진'이 아니고 '영상'이기 때문에 전혀 다른 '결과물'이다라고 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A와B의 전례가 있기 때문에 분명 C-또는 C+로 결론 나야 할 사안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건 D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C는 괴로웠지만, 그 논란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C2를 찾아 나서기로 마음 먹었고

 

훗날 수없이 많은  C2, C3....라는 봉오리를 발견해서 지구별 최고의 탐험가로 인정 받았다.

하지만, C2, C3도 A 오리지날의 모습과 유사한 특성들은 있었다고 인정했다.

같은 별 안의 산들 이었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A를 넘어서는

C premium봉오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도전했다....죽을 때까지.

 

그렇게 '지구별'에는 탐험가들과 그들의 사진과 영상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싸움으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

.

.

 

무슨 생각이 드는가?

'표절'하고 거리가 먼 이야기 같은가?

 

계속 강조하겠지만, '대중음악 창작'을 완벽한 '창조'로 보는 견해들에 먼저 말해둔다.

'대중음악 창작'은 '창조'라고 볼 수 없다.

 

뼈를 깍는 '창작의 고통은 있으되' 그것은 '창조'가 아닌 '발견'이다.

세상 그 누구도 '음[Note]'이라는 것을 '창조'하지 않았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다.

'음'은 발견된것이다.

 

그리고 그 '음'들의 가장 단순한 조합 중의 하나가 '대중음악'이다.

 

50음계나, 무조성 현대음악 또는 서양의 클래식 음악이나 재즈적 화성처럼 복작한 구성이 아닌 굉장히 단순한 조합이라는 것이다.

'가사'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하소설이 아닌것이다.

A4 한장을 넘기 힘든 낱말의 조합이다.

하지만, 이 가사는 그래도 그 경우의 수가 훨씬 많아서 논란의 여지가 적다.

 

하지만, '작곡'의 경우, 그것은 '창조'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수준이다.

 

대중음악 창작은 '아무나 할 수 있다.'

이를 증명하는 예는 얼마든지 있다.

대중음악 작곡, 작사는 아무나 할 수 있다.

 

뒷동산 등산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단지 그 안에 기능적으로 숙련된 사람들의 영역이 존재할 뿐이다.

 

 

'대중 음악 창작의 과정은 쉬운 수학의 조합이다'

 

하지만, 감성이라는 아주 중요한 양념이 가미되는 조합이이에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모두에게 사랑받기는 힘들다.

 

대중음악 '표절'은 필연적인 사건이며,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많이 생겨날 것이다.

그만큼 많은 발견들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내 주장을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렇다.


[표절 이슈]는 '결과'로 논의되어서는 안된다.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단순히 악보를 보고 현상을 이야기 하는 것은 '표절'에 대한 본질적 이해가 아니다.

'표절'은 자세의 문제다.

 

지금 사람들은 먼가 잘못된 관점에서 사건의 배후를 가리려고 한다.

 

'대중음악 창작'은 엄청난 탐구와 연구의 결과가 아니다.

12개의 음의 단순 조합이다.

 

대부분의 작곡가들은 그저 '흥얼거리며 곡을 만든다'

단지 그것을 전문적으로 흥얼거리며, 숙련된 흥얼거림의 노하우와 노력, 세련된 양념을 첨가할 뿐이다.

 

물론, 경우의 수는 엄청나지만, 그 엄청난 경우의 수에서 우리 귀를 자극하는 감성코드는

이미 다 정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이 경우의 수에 감성이라는 조합이 있기에 지금까지 '표절 논란'이 그 까칠한 성격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아참, 내가 아까 A.B.C.D의 예에서 마지막 반전을 빼 놓고 이야기 하지 않았다.

 

 

 

20년이 지난 후에 충격적인 진실이 지구별에 전해졌다.

C와 D가 처음 촬영한 논란의 결과물도 사실은 A봉오리 였다는 것이다.

 

C는 어려운 길을 택해 10년을 돌고 돌아 도착한 C봉오리가 자신만의 봉오리라 생각했지만,

결국 C도 D도 다른 탐험길로 간 같은 A봉오리의 10년후의 다른 계절의 사진과 영상을 촬영했던 것이었을뿐

같은 봉오리 였던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된 C는 A에게 사과를 하고 자신의 결과물의 이름을 A-로 정정하며

다시 C4, C5를 찾아 떠났다고 한다....

 

 

 

 

 

단지 12개의 자연음의 배열로 이루어지는 '대중음악'에 완벽한 창작이란 없다.

또한 완벽히 같은 음악도 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새로운 것을 창작하겠다라는 '탐험의지'다.

우리는 '대중음악 창작자'를 '발명자'로 오인한다.

이는 대중음악의 단순한 원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잘못된 '인식'이다.

 

대중음악의 창작은 '발명'이 아닌'발견'이다.

 

공기 중에 떠 다니는 '좋은 음의 배열'을 먼저 발견하는 사람에게 '창작자'라는 이름을 주는 것

이것이 '창작이라고 불리는 것의 프로세스'다.

 

내가 '대중음악'이라고 계속 한정 짓는 것은

그만큼 대중음악의 틀이 A봉오리만큼 좁디 좁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시간, 좋아하는 장르, 좋아하는 분위기, 좋아하는 톤

.

.

.

그것을 '의식'하며 만들다 보면, 우리는 A봉오리에 있거나, A를 닮은 B 봉오리에 있는 것이다.

 

자 그러면, A.B,C.D중에 누가 과연 가장 올바른 자세의 창작자인가?

 

당연히 A C다.

C는 분명히 A를 C로 착각했지만, 그 자세는 A와 같았고, 그 뒤의 업적들이

그의 애티튜드의 결과를 말한다.

 

그렇다면, 오늘 이글의 재미있는 질문 하나?

 

 

박진영은 과연 A,B,C.D중에 누구와 닮았을까?

E일까? F일까?

 

.

.

난 박진영이 '표절'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곡을 만들었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A.와 C처럼 놀라운 탐험가 정신을 가졌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가 A가 되고 싶지만, 쉽지 않다.

 

'C의 탐험의지'가 바로 '대중음악 창작가'의 자세다.

 

 

다른 길을 가겠다.

 A만큼 멋진 봉오리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

 

이거면 충분하다고 보는게 내 생각이다.

 

그렇게 발견한 자신만의 봉오리가 A의 일부거나 , A와 비슷한 A2 봉오리일수 있다.

둘다 가슴 아픈 상황이지만, 현실의 대중음악 창작 현실이다.

 

완전히 A일 가능성은 없지만, A2 A3일수도 있다.

A-, A+...일 수도 있다.

 

 

그럼 어떻해야 하나?

 

인정하는것이다.내가 새로운 길을 간것이 아님을 인정하고 먼저 그 길을 걸어간

사람들에게 '사과' '인정'이라는 자세를 보이면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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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은 존재하지않는 이야기도 잠깐 하자.

사실, 나는 한때 A.B,C.D도 아닌 말도 안되는 황당한 타잎의 '진짜 표절의 진면목' 국내 가요사에서

발견했었다...물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동의 할 것이다.

A봉오리를 찍어 놓고 끝까지 A가 아니다라고 빡빡 우기는 진정한 오리지날 '악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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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제는 그런 미친 넘들은 더 이상 없는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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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이야기 하고 글을 마치겠다.

 

내가 '박진영' 이라면 일단 '사과'와 '인정'을 하겠다.

먼저 길을 발견한 사람에게 당신이 나보다 먼저였습니다 라고 인정하는 것.

그리고 고개를 숙이는 일.

 

하지만, 왜 그렇지 못할까?

자신이 '발명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중음악 창작가들에게 있어야 할 자세는 '탐험가'의 자세다.

 

먼저 그길을 걸어간 탐험가에게 Respect를 표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진정성 있는 사과'와 'A'의 공로에 대한 '인정'만이

 A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고, 지구별의 논란을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상 대중음악 '표절 논란'에 대한 '개인적인 서술'을 마친다.

 

사실, 이글을...창작가들이 봐주었으면 한다는 생각도 든다.

아직도 주제 넘게 자신을 놀라운 '창조자'로 착가하는 오만한 자들과

우연한 발견으로 치부하며 '탐험'의 노력을 우습게 보는 이들이...말이다.

 

Peace!

 

 

 

 

 

 

 

 

PS-논란의 여지가 없는 '표절'이라는 것의 대표적인 예를 한가지만 보는것도 재미있겠다.

 

 

 

1. 표절곡-녹색지대의 '준비없는 이별'

 

1. 원곡-X Japan의 Endless Rain

 

 

 

 

 

 

2. 표절곡-녹색지대의 내가 지켜줄께

 

2. 원곡-X Japan의 Say Anything

 

1번의 준비없는 이별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배낀 곡이며, 2번의 내가 지켜줄께는 곡의 멜로디가 아닌 반주의 특성을 배낀 곡으로

아티스트로서의 자존심이라고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비양심의 극치라고 볼 수 있다.

 

아니, 사실 '아티스트'라는 말은 쓸 수 없는 예라고 할수 있다.

 

이외에도, 우리 가요사는 '표절'로 얼룩져있는 많은 상처로 뒤덮혀있다.

가요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대중 문화가 '배끼기'에 기초를 두고 있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일본'이 그 주 타겟이었는데, 일본은 이런 문제로 우리를 크게 괴롭히지 않은점만큼은

참으로 '대국'의 면모를 발휘했다고 봐야 할일 아닐까?.....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