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글을 읽기전에 일단 간단한 기사 한편을 보자.

http://economy.hankooki.com/lpage/sports/201501/e20150122093510120390.htm

관련 기사는 '킬미힐미 표절'이라는 단어로 검색하면 무수히 나온다.


난 사실 오늘 이 자품이 표절이냐 아니냐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Attitude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내 블로그를 통해'표절'에 대해 몇번 언급한 적이 있다.

'표절'은 근본적으로 '자세'의 문제다.



방송 드라마 작가들은 기본적으로 남을 '따라하는것'에 대한 자존의 상함이나 양심의 찔림이 무딘것 같다.

어쩔때 보면, 그들은 치킨집을 운영하는게 아닌가 싶다.....[무슨 소리냐구?]

"요즘은양념치킨이 유행이니 이걸 만들자...."

"요즘은 구운치킨이 유행이니 우리도 그걸 만들어 팔자."

라고....말하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창작인'이라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장사꾼'에 불과한...

그러니...유행을 좆아 다니며, 소재를 배끼는 것에 대해 무감각할 수 밖에...

그들은 법적으로 문제 되지 않을정도만 배끼는데에 '지혜'의 9할을 사용하는건 아닐까?


표절의 법적 문제는 떠나고서라도...

...일단 본인보다 먼저 논란이 되는 소재와 세계관과 설정을 펼친 사람이 

'이거 나랑 똑같네....너 왜그랬어' 라고 정당한 해답을 요구할때........

"죄송합니다"가 아니라.

"내가 뭘!" "이건 요즘 유행이야!"라고 오히려 더 큰 소리를 친다.[미친.....--]

일단 자신보다 먼저 그 소재를 발굴하고 주제의식을 개척한 '프론티어'에게

대답 할 첫 마디는 최소한...

"죄송합니다."..가 아닐까.....


그 다음에 9할의 지혜를 들여 공부한 '법' 얘기를 해야겠지.

무조건 '법적으로 문제없다.' '비슷한건 존재한다.'

이처럼 '양심' 구겨넣고, 빠져나갈 생각부터 한다는게......

'작가'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은 행동이라는 거다.


작년에 있었던 '설희'의 경우 '별에서 온 그대' 때문에 원작자인'강경옥' 작가는

합법적인 드라화/영화 판권 계약 기회를 박탈당해 버렸다.

이무슨 황당한 경우란 말인가!

'별그대' 작가의 오만 불손한 태도는 더욱 더 가관이었다.

히트만 하면 '최초'가 아니어도 된다는 싸구려 근성, 삼류 치킨집 마인드를 장착하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런....우리나라 '드라마 작가'들의 의식속에 내재되어 있는 '치킨집' 운영 마인드..는

가장 선배급인 '송지나' '김진'작자의 세계관을 가져와서 뻔뻔스럽게

치킨집 영업을 시작된 이래....계속되고 있다.

송지나의 소재차용이 성공하자,

이 삼류 치킨집 운영마인드를 후배 드라마 작가들이 너도 나도 따라하는것이다.

상상력은 딸리고 이름은 알려야겠고....하는수없이 여기 저기서 '유행'을 베끼고

베끼고 다듬고....혼나지 않게 숨기고.....

그렇게....그들의 '강령'이된...

"법적으로 피해갈수만 있다면 일단 힘없는 만화 작가들의 작품을 배껴라!"

가 지금의 뻔뻔함의 익숙함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매년 이런 일들이 벌어질것이다.


기본적으로 드라마 작가들과 만화 작가들의 상상력 차이에서 벌어지는 갭은 어쩔수가 없다.

드라마 작가들은 한정된 상황속에서 극을 써야하는 업무를 하고, 만화 작가들은 소재와 주재에 제약이 거의 없는 상황속에서

작가일을 하다보니, 어쩔수 없이 만화작가들의 상상력이 뛰어날 수 밖에 없다.

이부분은 어쩔수 없는 상황이라고 본다.

드라마 작가들의 고충이기도 하다.

시작부터 후달리기 때문에.....


하지만, 그것이 '표절'과 '소재차용'의 변명이 될 순 없다.

이번 사건에서 '하이드 지킬,나'는 '이충호' 작가에게 정당한 소재차용의 댓가를 지불했다.

그리고 작가는 그 소재를 이용해서 이야기를 실사 드라마 극에 맞게 편집했으리라.


이것이 올바른 길이다.

이야기를 창조할 능력이 없다면, 정당하게 방법으로 가져와서 '드라마'의 특수성에 맞게 'Editing'하는 일이 상식적이고 순리이며 합법이다.


논란을 일으키며 원작가의 가슴에 상처를 주고, 공방을 하고 겨우 법망을 빠져나와선.....

"거봐라! 난 문제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은 '장사꾼'이 할 말이지. 

적어도

적어도

적어도


"작가"

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 할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게 절대권력이 있어서 시간을 돌려 올바른 판단을 내릴수 있는 권한과 기회가 주어진다면

'김진' 작가의 '바람의 나라'가 '송지나'의 '태왕사신기'에 유린당하던 날로 가고 싶다.

그리고 정확하게 말해주고 싶다.


"송지나, 당신이 '작가'로 불려지려거든 지금 '김진'작가에게 

원작가에 대한 예우를 갖추고 사과하고,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여 드라마로 편집하시오"


..라고 말이다.


그때부터 틀어졌다.

첫 단추가 잘 못 끼워졌기 때문에 지금의 이런 창피한 일들이 벌어진것이다.



'완벽한 창조'란 없듯이 '완벽한 표절'도 없다.

단지, 완벽한 창조를 꿈꾸며 피땀흘려 길을 개척하는 작가정신이 있으며

완벽한 표절을 피하기 위해 요리조리 배끼는 비양심이 있을뿐이다.


법의 심판을 피했다고 떳떳할 수 없다.

'양심'의 심판은 남아있기 때문이다.



작년에 '별그대'는 초대박을 쳐서 중국에서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중국에선 '별그대'를 표절한 드라마가 만들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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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강조한다.

'표절'은 '태도' '자세'의 문제다

다른 방향으로 접근하면 '답'이 없다.

지금 사람들은 엉뚱한 것으로 갑론을박하고 있다.

접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하고 싶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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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 작가들의 머리 속에 가득차 있는 

'창작인'이라는 허울 속에 있는 '삼류 치킨집' 운영마인드.

이제는 버리자.


제발 힘든길이라도 '최초'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진짜'작가'들이 방송국에 많이졌으면 좋겠다.



-'한류'라는 단어가 자랑스럽지 못한 날이 오지 않기를......-







인터넷 포탈의 '메인화면'에는 5초이상 눈길을 주어선 안된다.

그 이상 쳐다보면, 제 아무리 보살같은 자라 할지라도 '클릭'하고픈 기사 하나쯤은 꼭 있게 마련이다.

 

TV를 보지 않기 때문에 나에게 포탈 메인화면은 '이슈와 유행'을 알수 있는 가장 확실한 채널이지만 요즘은 하도

거지같은 글들이 많아서[주제나 소재를 떠나서....한글 맞춤법이나 문법의 문제가 심각하다.......ㅠㅜ] 멀리하는 편이다.

하지만, 음악 관련 글들 중에 '표절'같은 소재는 절대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이번에는 대중음악계의 거물급 인물 '박진영'이 타겟이 된 모양이다.....

일년에 한번 이상 찾아오는 '표절'시비에 대한 이해는 각계계층에서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예술'에서의 '표절' 큰 문제다.

자칫....'아티스트'를 '잡놈'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거의 대부분의 '예술분야'에서는 '표절 시비'가 그렇게 자주 거론 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이넘의 국내 '대중음악'씬에서의 '표절'시비는 단 한해도 그냥 넘어가 주질 않는다.

 

 

 

 

 

 

 

서론이 길었다.

이제부터 이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대중 음악에 있어서의 표절'이란 것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올바른 가치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

간단한 '인사이트?'를 제공하고자 한다.

 

우리가 만나는 대중음악들에 완전히'똑같은 것은없다'라고 본다.

심지어 노래방 반주기의 반주조차 완전히 같은 노래의 반주라고 볼 수 없는 경우도 있기에...

세상에 완전히 똑같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도 같은 이치일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완벽한 창작' 또한 절대 없다.

 

무슨 이야기일까?

 

'창작'이란 엄밀한 의미에서 '창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대중음악의 창작'은 어떤 프리즘으로 바라봐야 할까?

 

 

 

그것은 '발견'으로 접근하면 이해가 빠를수 있다.

 

지금 부터 풀어 놓는 '예'를 '대중음악의 창작'이라고 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살기 좋은 별이 있었다.

이 '별'에는 많은 산봉오리들이 존재하는데, 그곳에는 정말 아름다운 나무와 꽃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이별에 도착한 지구인들은 이별의 산봉오리들을 정복하기 위해서

너도 나도 탐험에 나섰다.

 

탐험가들은 여기 저기 좋은 곳이라 생각되는 봉오리를 오르기 위해 도전을 시작했다.

 이윽고 니콘의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탐험을 시작한 A라는 탐험가가 너무나 아름다운 산봉오리를 발견했고

가장 멋진 구도에서 A봉오리의 사진을 찍어서 지구별의 사람들에게 전송했다.

 

지구별 사람들은 그 별의 아름다운 모습들에 반하며, 그 사진을 촬영한 A 탐험가에게

경의를 표하며 그 사진을 구입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생겨났다.

또 다른 B라는 탐험가가 최신형 캐논 디지틀 카메라로 비슷하지만 더 선명하고 이쁜 사진을 전송하며

이를 B봉오리라며 지구별 사람들에게 판매했다.

 

A봉오리보다 칼라풀하며 선명한 이 B봉오리의 사진들!

A봉오리와 비슷한 모양에 비슷한 꽃나 나무들의 사진이었지만, 더 풍성해 보이고 아름다워 보이는 이 B봉오리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충격적인 사실이 알려졌다.

이 B봉오리 사진은 사실, 1년 전에 A탐험가가 갔었던 A봉오리를 B가 다시촬영한 사진이었던 것이다.

 

지구별에서는 난리가 났다.

일단, A탐험가는 B탐험가에게 이럴수 있느냐며 따져 물었다.

자기가 이미 1년 전에 갔었던 곳을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B봉오리라며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B탐험가는 A탐험가에게 항변했다.

내가 보기엔 그 별의 봉오리 중에 A봉오리가 제일 멋져 보여서 가긴 갔다.

그런데 나는 A가 찍은 구도 보다 더 멋진 반대편에서 촬영을 했고, A가 가져간 허접한 구형 카메라가 아닌

최신 장비인 캐논 장비와 후보정 도구들을 가지고 올라가는 고생을 했다는 것이다.

 

A탐험가는 황당했다.

자신이 분명 지구별 사람중에 가장 먼저 정복한 봉오리였는데, 이름도 자신의 이름을 따서

분명히 A봉오리라고 지었는데, 어떻게 B라는 이름으로 사진을 판매했냐는 것이다.

 

B탐험가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같은 봉오리는 맞지만, A의 사진보다 내가 촬영한 사진이 훨씬 멋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같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그랬다.

이름을 정정하겟다.

A+ 사진으로 하겠다.

 

A는 더 큰 분노로 B와의 진흙탕 싸움을 시작했다.

A-로 해라!

내가 먼저 정복한 산이고, 내가 먼저 촬영한 봉오리다.

 

하지만, 지구별 사람들의 입장은 나뉘기 시작했다.

A+다. 아니다 이건 A-다. 아니다 이건 아주 다른 B다....라고

결국 이 사건은 A-, A+라는 두개의 안을 두고 오랫동안 논쟁거리가 되었다.

 

이런 지구별의 난리를 목격한 C와 D의 에피소드를 한예로 더 들어보자.

 

기존의 탐험가들은 A의 높고 멋진 광경에만 열광했는데, C는 논란에 휩싸이는 탐험가가 되기 보다는

새로운 봉오리의 사진을 지구별에 보내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하고 싶은 타잎이었다.

 

그래서 C는 출발점을 전혀 다른 곳에서 시작하여 험한 길을 돌아 돌아 힘든 탐험을 계속하여 10년 후에

 놀랍게도 A만큼 아름다운 C봉오리를 발견하기에 이른다.

유레카! 유레카!

 

C는 준비해간 카메라로 모든 구도의 사진 수천장을 지구로 전송했다.

놀라운 광경의 파노라마에 감동한 지구별 사람들은 C에게 열광했다.

 

 

하지만, 또 다시 사건이 터졌다.

D라는 탐험가가 바로 뒤이어 그 길을 따라, C봉오리의 동영상을 더욱 아름답게 촬영해서 지구별에 전송한것이다.

그리고 이름을 D라고 했다.

 

역시 지구별은 또 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이건 '사진'이 아니고 '영상'이기 때문에 전혀 다른 '결과물'이다라고 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A와B의 전례가 있기 때문에 분명 C-또는 C+로 결론 나야 할 사안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건 D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C는 괴로웠지만, 그 논란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C2를 찾아 나서기로 마음 먹었고

 

훗날 수없이 많은  C2, C3....라는 봉오리를 발견해서 지구별 최고의 탐험가로 인정 받았다.

하지만, C2, C3도 A 오리지날의 모습과 유사한 특성들은 있었다고 인정했다.

같은 별 안의 산들 이었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A를 넘어서는

C premium봉오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도전했다....죽을 때까지.

 

그렇게 '지구별'에는 탐험가들과 그들의 사진과 영상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싸움으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

.

.

 

무슨 생각이 드는가?

'표절'하고 거리가 먼 이야기 같은가?

 

계속 강조하겠지만, '대중음악 창작'을 완벽한 '창조'로 보는 견해들에 먼저 말해둔다.

'대중음악 창작'은 '창조'라고 볼 수 없다.

 

뼈를 깍는 '창작의 고통은 있으되' 그것은 '창조'가 아닌 '발견'이다.

세상 그 누구도 '음[Note]'이라는 것을 '창조'하지 않았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다.

'음'은 발견된것이다.

 

그리고 그 '음'들의 가장 단순한 조합 중의 하나가 '대중음악'이다.

 

50음계나, 무조성 현대음악 또는 서양의 클래식 음악이나 재즈적 화성처럼 복작한 구성이 아닌 굉장히 단순한 조합이라는 것이다.

'가사'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하소설이 아닌것이다.

A4 한장을 넘기 힘든 낱말의 조합이다.

하지만, 이 가사는 그래도 그 경우의 수가 훨씬 많아서 논란의 여지가 적다.

 

하지만, '작곡'의 경우, 그것은 '창조'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수준이다.

 

대중음악 창작은 '아무나 할 수 있다.'

이를 증명하는 예는 얼마든지 있다.

대중음악 작곡, 작사는 아무나 할 수 있다.

 

뒷동산 등산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단지 그 안에 기능적으로 숙련된 사람들의 영역이 존재할 뿐이다.

 

 

'대중 음악 창작의 과정은 쉬운 수학의 조합이다'

 

하지만, 감성이라는 아주 중요한 양념이 가미되는 조합이이에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모두에게 사랑받기는 힘들다.

 

대중음악 '표절'은 필연적인 사건이며,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많이 생겨날 것이다.

그만큼 많은 발견들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내 주장을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렇다.


[표절 이슈]는 '결과'로 논의되어서는 안된다.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단순히 악보를 보고 현상을 이야기 하는 것은 '표절'에 대한 본질적 이해가 아니다.

'표절'은 자세의 문제다.

 

지금 사람들은 먼가 잘못된 관점에서 사건의 배후를 가리려고 한다.

 

'대중음악 창작'은 엄청난 탐구와 연구의 결과가 아니다.

12개의 음의 단순 조합이다.

 

대부분의 작곡가들은 그저 '흥얼거리며 곡을 만든다'

단지 그것을 전문적으로 흥얼거리며, 숙련된 흥얼거림의 노하우와 노력, 세련된 양념을 첨가할 뿐이다.

 

물론, 경우의 수는 엄청나지만, 그 엄청난 경우의 수에서 우리 귀를 자극하는 감성코드는

이미 다 정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이 경우의 수에 감성이라는 조합이 있기에 지금까지 '표절 논란'이 그 까칠한 성격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아참, 내가 아까 A.B.C.D의 예에서 마지막 반전을 빼 놓고 이야기 하지 않았다.

 

 

 

20년이 지난 후에 충격적인 진실이 지구별에 전해졌다.

C와 D가 처음 촬영한 논란의 결과물도 사실은 A봉오리 였다는 것이다.

 

C는 어려운 길을 택해 10년을 돌고 돌아 도착한 C봉오리가 자신만의 봉오리라 생각했지만,

결국 C도 D도 다른 탐험길로 간 같은 A봉오리의 10년후의 다른 계절의 사진과 영상을 촬영했던 것이었을뿐

같은 봉오리 였던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된 C는 A에게 사과를 하고 자신의 결과물의 이름을 A-로 정정하며

다시 C4, C5를 찾아 떠났다고 한다....

 

 

 

 

 

단지 12개의 자연음의 배열로 이루어지는 '대중음악'에 완벽한 창작이란 없다.

또한 완벽히 같은 음악도 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새로운 것을 창작하겠다라는 '탐험의지'다.

우리는 '대중음악 창작자'를 '발명자'로 오인한다.

이는 대중음악의 단순한 원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잘못된 '인식'이다.

 

대중음악의 창작은 '발명'이 아닌'발견'이다.

 

공기 중에 떠 다니는 '좋은 음의 배열'을 먼저 발견하는 사람에게 '창작자'라는 이름을 주는 것

이것이 '창작이라고 불리는 것의 프로세스'다.

 

내가 '대중음악'이라고 계속 한정 짓는 것은

그만큼 대중음악의 틀이 A봉오리만큼 좁디 좁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시간, 좋아하는 장르, 좋아하는 분위기, 좋아하는 톤

.

.

.

그것을 '의식'하며 만들다 보면, 우리는 A봉오리에 있거나, A를 닮은 B 봉오리에 있는 것이다.

 

자 그러면, A.B,C.D중에 누가 과연 가장 올바른 자세의 창작자인가?

 

당연히 A C다.

C는 분명히 A를 C로 착각했지만, 그 자세는 A와 같았고, 그 뒤의 업적들이

그의 애티튜드의 결과를 말한다.

 

그렇다면, 오늘 이글의 재미있는 질문 하나?

 

 

박진영은 과연 A,B,C.D중에 누구와 닮았을까?

E일까? F일까?

 

.

.

난 박진영이 '표절'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곡을 만들었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A.와 C처럼 놀라운 탐험가 정신을 가졌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가 A가 되고 싶지만, 쉽지 않다.

 

'C의 탐험의지'가 바로 '대중음악 창작가'의 자세다.

 

 

다른 길을 가겠다.

 A만큼 멋진 봉오리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

 

이거면 충분하다고 보는게 내 생각이다.

 

그렇게 발견한 자신만의 봉오리가 A의 일부거나 , A와 비슷한 A2 봉오리일수 있다.

둘다 가슴 아픈 상황이지만, 현실의 대중음악 창작 현실이다.

 

완전히 A일 가능성은 없지만, A2 A3일수도 있다.

A-, A+...일 수도 있다.

 

 

그럼 어떻해야 하나?

 

인정하는것이다.내가 새로운 길을 간것이 아님을 인정하고 먼저 그 길을 걸어간

사람들에게 '사과' '인정'이라는 자세를 보이면 된다.

 

 

.

.

.

그리고 지금은 존재하지않는 이야기도 잠깐 하자.

사실, 나는 한때 A.B,C.D도 아닌 말도 안되는 황당한 타잎의 '진짜 표절의 진면목' 국내 가요사에서

발견했었다...물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동의 할 것이다.

A봉오리를 찍어 놓고 끝까지 A가 아니다라고 빡빡 우기는 진정한 오리지날 '악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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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제는 그런 미친 넘들은 더 이상 없는것 같다.

 

.

.

.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이야기 하고 글을 마치겠다.

 

내가 '박진영' 이라면 일단 '사과'와 '인정'을 하겠다.

먼저 길을 발견한 사람에게 당신이 나보다 먼저였습니다 라고 인정하는 것.

그리고 고개를 숙이는 일.

 

하지만, 왜 그렇지 못할까?

자신이 '발명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중음악 창작가들에게 있어야 할 자세는 '탐험가'의 자세다.

 

먼저 그길을 걸어간 탐험가에게 Respect를 표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진정성 있는 사과'와 'A'의 공로에 대한 '인정'만이

 A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고, 지구별의 논란을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상 대중음악 '표절 논란'에 대한 '개인적인 서술'을 마친다.

 

사실, 이글을...창작가들이 봐주었으면 한다는 생각도 든다.

아직도 주제 넘게 자신을 놀라운 '창조자'로 착가하는 오만한 자들과

우연한 발견으로 치부하며 '탐험'의 노력을 우습게 보는 이들이...말이다.

 

Peace!

 

 

 

 

 

 

 

 

PS-논란의 여지가 없는 '표절'이라는 것의 대표적인 예를 한가지만 보는것도 재미있겠다.

 

 

 

1. 표절곡-녹색지대의 '준비없는 이별'

 

1. 원곡-X Japan의 Endless Rain

 

 

 

 

 

 

2. 표절곡-녹색지대의 내가 지켜줄께

 

2. 원곡-X Japan의 Say Anything

 

1번의 준비없는 이별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배낀 곡이며, 2번의 내가 지켜줄께는 곡의 멜로디가 아닌 반주의 특성을 배낀 곡으로

아티스트로서의 자존심이라고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비양심의 극치라고 볼 수 있다.

 

아니, 사실 '아티스트'라는 말은 쓸 수 없는 예라고 할수 있다.

 

이외에도, 우리 가요사는 '표절'로 얼룩져있는 많은 상처로 뒤덮혀있다.

가요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대중 문화가 '배끼기'에 기초를 두고 있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일본'이 그 주 타겟이었는데, 일본은 이런 문제로 우리를 크게 괴롭히지 않은점만큼은

참으로 '대국'의 면모를 발휘했다고 봐야 할일 아닐까?.....씁쓸하다..

 



영화'아바타'는 단순한 표현으로 아름다운 영화다.
그런데, 너무나 아름다운 영화다.

이영화를 늦게나마 그것도 3D로 볼수 있었던것이 행운이라면 행운일까....어쨌든, 영화에 대해 너무나 할 말이 많다
하지만, 칭찬일색인 블로거들과, 리뷰속에서 내 생각만을 최대한 짧게 전해 보고자 한다.

영화'전우치' 때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오르는 여러 가지 영화가 아니..정확하게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거성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다.


뭐, 이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너무나 직관적인 코드 여서.....
외형적인 모습은 둘째로 치더라도....하야오 감독이 평생에 걸쳐 보여준 '자연주의'적 모티브가 그대로 녹아 있다.

사실, 표절이라는 말을 써도 할말 없을듯하지만, 간지 나오게.....오마쥬라고 해주자...
특히나 영화는 원령공주와 나우시카의 세계관을 그대로 가져다가 박아놓았다.

제임스 카메룬이라는 감독은 단순한 오락 영화 감독이 아니고, 앞서가는 오락영화 감독이 아니던가!
그가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3D라는 새로운 애니메이션으로 답습했지만, 결국 또 다른 새로운 것이 튀어나왔다.

'아바타'가 하야오의 답습이라는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작은 비난 조차 피해 갈 수 있는 숨겨진 주제 의식은 무엇일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아직 없는 것 같아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확신컨대 카메룬도 내 생각과 같을 것이다.^^ㅋㅋ]

'아바타'는 사실 표면적으로 보면 자연주의내지는 범신론 내지는 3D 테크놀로지, 그것도 아니면 아주 간단한 스토리 라인 뒤의 권선징악적 주제의식을 보여주지만, 그 이면에 단 한단어가 숨어있다.

그건 바로'연결'이다........Network.....이것이 바로....자연주의와 함께 살짝 숨어 있는 주제 의식이다.

카메룬이 말하는 아바타적 자연주의는 얼핏 보면, 니가 바로 나고 내가 바로 너라는 사상이다.
눈에 보이는 사물과 보이지 않는 에너지 조차 내가 그리고 당신이 돌아가야 하는 곳이기에, 결국은 모두가 '하나'라는 지극히 동양사상에 더욱 가까운 자연주의....바로 그것이다.

나는 카메룬이 본질로 돌아가자, 라는 말 이외에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고 .......사실 확신한다.



요즘, 이녀석이 한국에서도 대세다......바로 i phone~
이녀석은 '스마트 '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시대속에서 뉴미디어를 주도해 나가는 아이콘 중 아이콘이라 하겠다.
아이폰같은 스마트 폰으로 인해 이제 우리는 모두가 온라인 될수 있고, 수많은 어플리케이션으로 인해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얻을 수 있게 된다.

2010년 ...앞으로의 세상은 과연....어떤 세상일까....바로.........'연결의 세상'이 될것이다.
카메룬은 이 영화를 아이폰이 나오기 전부터 기획했겠지만, 충분히 세상이 연결되는 세상을 예상했을 것이고, 모티브가 머리속에서 돌아다니다가..
결국, 딱 맞는 개봉시기에 이 주제 의식은 빛을 발하게 되었다.

영화속에서 원시적인'나비'족은 결코 본질적으로 옛날을 상징하지 않는다.
반대로 '미래'를 상징한다.

'나비'족은 판도라 행성 모든 것과 '연결'될수 있다..........'연결 되어 있다' 표현 보다 '연결될수 있다' 표현이 더욱 어울릴 것이다.



이 영화의 대박 즐거움 중의 하나라면.....바로 이녀석 '아크란'을 타고 하늘을 나는 많은 장면들일 것이다.........3D여서 그랬는지 정말
멋졌다~~이 녀석의 더듬이 같은 촉수와 '나비'족의 머리카락속 촉수가 서로 '연결 될때 '교감'이라는 것이 일어나 '나비'족은 하늘을
날 수 있게 된다.

바로 '아크란'이라는 '어플리케이션'으로 하늘을 날수 있는 정보는 획득하는 것이다.
왜 내가......'연결되어 있다' 라는 표현 보다, '연결 될수 있다' 라는 '선택'이라는 개념이 추가된 표현을 쓰는 것일까....지겨워도 계속 읽어보자..


이녀석은 '나비'족 조차도 컨트롤리 불가능한 거으로 알려진 하늘의 폭주족 '토루크'다...도루묵인지 토루크 인지....이녀석은 '나비'족 선조 5명하고만 '교감'이 가능했지만, 지구인 아바타 '제이크'는 목숨을 건 도전 끝에 이녀석과 '교감'을 성공한다.
'연결'되기 아주 힘든 녀석과 '연결' 된 것이다.

아직 세상 모든 사람이 모바일과 최첨단 뉴미디어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선택 사항일 뿐이다.....연결 하느냐, 마느냐는.....순전히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주인공 제이크는 이 도루묵과 연결됨으로써,  다시금 '나비'족의 신뢰를 얻게 된다.
'나비'족은 미래를 말한다...바로 미래의 코드인 '연결'을 하는 집단이며, '지구인'은 구시대의 고정관념으로 '연결'을 거부하거나 모르는 세대 인것이다.


이 불독 같이 생긴 괴물은  제일 처음, 영화의 추격전을 연출했던 멋진 녀석으로서, 주인공 제이크를 잡아 드시려고 시도했던, '나비'족 중
그 누구와도 '교감'이 된 적 없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제이크의 간곡한 '교감 기도'로 인해 대지는 이녀석 과의 '연결'도 허락해준다.
그래서 마지막에 다시 등장한 이 불독은 여주인공 '네이티리'에게 '연결' 당하고 ^^ 만다!

무슨 말인가?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연결 되지 못 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그것이 심지어 '적'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공산주의, 또는 독재체제의 국가와 적대적인 국가인 민주주의 공화국이라 할지라도, 유저는 '연결'을 시도 할 수 있는 무한 선택의 가능성의 시대
에 있는 것이다.
영혼의 나무, 또는 에이와 신은 '아바타'의 기도를 들어준다.
마찬가지로, 시대는 '유저'들의 연결 욕구를 충족 시키게 될 것이다....

새로운 세대로 대표 되는 '나비'족과 구시대로 대표 되는 '지구인' 그리고 이 사이에서 이들을 '연결' 하려는 새로운 종족인 '아바타'...

영화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자연주의, 권선징악 이라는 간단한 주제 의식 사이로 바로 '연결'이라는 코드를 외치고 있다.

너와 내가 연결되고, 내가 세상과 연결되고, 심지어는 '연결'이 불가능할 것 처럼 보이는 것과의 연결도 시도할 수 있다는 ...

영화의 마지막에 지구인은 판도라로 대표 되는 미래 사회에서 퇴출 된다...(아~~어쩌란 말인가! 구시대인들이여~!!)...단 몇명의 지구인을 빼고 말이다....바로 '연결'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이들...그리고....불완전한 지구인이었던 지구인 '제이크'는 '에이와신' 앞에서 '나비'족으로 눈을 뜬다.

바로 미래 세계....'연결'의 세대 속에서 살아갈 것을 결심하고 '연결'을 거부했던 지구인으로서의 자아를 포기하는 것이다.

세상은 변했다....나 또한 2G 휴대폰으로 전화와 문자 메세지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옛날 사람이다.
사실, 이영화가 말하는 진짜 '연결'은 단순히 미래사회의 테크놀러지와 융합하라는 것만은 아닐터...
바로 상생의 삶........



'이해 하는것이, 연결하는 것이 바로 생존의 조건'
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저나....아이폰.....참 좋던데.......

카메룬 형아는 무슨 폰 쓴대여?







전.우.치- Impact 있는 영화 타이틀!
이런게 바로 이름 짓는 센스 아니겠는가!


하지만......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난건..........바로............이분.......머털 도사 !!


예전 '만화왕국' 또는 '국민학생' 이라는 단어를 전해오는 얘기가 아닌 몸으로 느꼈던 세대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 전설의 도사...
아마 대한민국에서 활동한 모든 도사를 통틀어[전우치를 포함해서]이분 만큼 능력있고 덕망있고 유명한 도사님은 아니 계셨으리라....

머리카락부적으로, 머털도사의 스승인 누덕도사는 전우치의 스승으로 나오는 백윤식으로, 자신의 속내를 숨기고 기회를 엿보는 왕질악[왕지락인지...헷갈리네] 도사는 화담으로...기가 막히는 건....주인공 전우치와 스승의 거처가....머털도사의 그것과...아주 똑같다는 것이다....
어쨌든, 표절이내 카피니 하는 말을 하려는 건 절대 아니다.왜냐면.........왠만큼 창조적이지 않고서는 '도사'라는 캐릭터가 거기서 거기 아니겠는가.. 본인이 하고자 하는 말은..........단순히.....'퀄리티의 '비교'라는 말이다..

기.승.전.을 넘어서 바로 가자면.............은.......머털도사님 ''!


이유인즉슨.....제아무리 오락영화라 하지만, 전우치에는 어떠한 철학적 고찰도 없다는 것이다.
머털도사가 주었던 도가의 가르침--에 비하자면.....전우치는 '국민학생'이 아닌 유아용 영화이다.
하지만, 강동원의 시원한 마스크와 재미있는 설정과 진행으로 인해.....이 유아용 영화에 성인이 몰리고 있다.

누덕 도사는 모자라지만, 순수한 머털이에게 여러가지 수행과 삶으로 깨달음 주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깨달음을 얻는 머털이는 머리카락이 없이도 도술을 부리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고, 원수를 갚는 것 보다 더욱 가치 있는 결말 보여준다.

하지만, 부적이 없으면 한낮 건달에 불과한 전우치가 부적없이 도술을 사용하는데에는 그 어떠한 깨달음의 과정도 없다.
돈에는 관심 없고 오직 최고의 도사가 되겠다는 전우치의 코드가 신선함
을 전해 주는 시나리오는 여기저기서 보이지만, 이것 또한 유아용에서 성인용으로 거듭날 수 있는 비술[?]로는 승화 하기 어렵다.

장편영화의 상영시간을 핑계 삼자니, 세상에는 그와 비슷하면서 그 보다  휼륭한 명작이 넘쳐난다.[와호장룡, 영웅.....]
어째서 우리나라는 칼을 쥐어 드는 영화마다[비천무, 무영검...]
철학은 빠지고 코미디가 비집고 들어가는가...

아마도, 영화를 보는 관객층의 수준이 그것에 맞추어져 있으니까?....아니면 제작진의 역량이 미달이어서....
^^...

머털도사를 넘지 못한 전우치1탄의 후속작은 다음번에 반드시 머털도사의 수준까지 오를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기를 바래본다.

아참. 강동원은 정말 멋진 남자 배우 인것 같다! 이정도면 악평은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더 하자면...
최근 국산 영화중, 이 전우치의 후시 녹음은 최악이다.
80년대 영화수준의 포스트 작업....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강동원과 여주인공 임수정의 목소리 연기는.......정말...압권이다...--....


그리고.....이포스터 정말 맘에 든다...^^
그나저나...글은 저렇게 썼지만...영화 참....재밌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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